교토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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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립박물관
교토국립박물관

Column 01

교토국립박물관의 설립으로 이어진 교토박람회

개관 직후의 본관 전경

개관 직후의 본관 전경

가에이 4년(1851), 런던에서 세계 최초로 만국박람회가 개최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럽을 중심으로 만국박람회 붐이 일었습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박람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개최된 것이 메이지 4년(1871)의 교토박람회입니다. 메이지 6년(1873)부터는 천황의 거처인 고쇼[御所]의 일부 공간에서 매년 개최하게 되어 상설 박람관도 건립되었습니다.

메이지 8년(1875)에는 교토부가 교토박물관의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교토의 귀중한 문화재를 다수 기탁받아 전시하기로 되어 있었던 이 계획을 주도한 사람은 교토박람회의 흥행을 이끈 과학자 아카시 히로아키라였습니다. 부지도 박람회 개최 실적이 있는 고쇼[御所] 일대로 선정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자연과학도 포함한 다분야의 자료를 다루는 종합박물관으로 개관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계획은 중단되었고 메이지 22년(1889)에 다시 제국박물관 건설 계획이 추진되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렇듯 교토박람회부터 다양한 모색을 거쳐 박물관의 설립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Column 02

부지의 역사

부지의 역사

헤이세이 지신관에 표시된 호코지 절의 초석이 놓였던 장소

교토국립박물관의 부지는 고시라카와 법황(1127~1192)의 처소였던 호주지도노의 일부였습니다. 렌게오인 산주산게도 절도 원래는 그 일부였기 때문에, 절의 남대문에서 일직선상의 북측에 교토국립박물관의 남문과 헤이세이 지신관의 현관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후 모모야마시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가 창건한 호코지 절 대불전 부지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데요시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1593~1615)가 정비한 회랑과 남문의 유구가 교토국립박물관의 부지 내에 존재하여, 현재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헤이세이 지신관 앞의 수반 등에는 초석이 놓였던 자리가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헤이세이 지신관은 이러한 역사적 콘셉트를 살리는 형태로 설계되었습니다.

Column 03

정원

원형 대분수  좌측
오조대교의 다리와 횡목
우마마치 십삼중석탑

위: 원형 대분수
왼쪽 아래: 고조 오하시 다리와 횡목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오른쪽 아래: 우마마치 십삼층석탑

옛 정문(현재 서문)과 본관 사이에 위치한 둥근 연못은 규모와 위치에 약간의 변화는 있으나 개관 당시부터 자리하였습니다. 당시의 건설 계획은 비와코 호수에서 물을 끌어와 분수를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진 못했습니다. 지금의 원형 대분수는 쇼와 43년(1968)에 마쓰시타전기산업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입니다. 개보수를 거치면서 지금도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당시부터 연못 주변은 화단과 잔디밭을 갖추었으며 일반에도 개방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쇼와 25년(1950)에 로댕의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을 정원에 설치하게 되면서 정원에 설치된 문화재를 관리하기 위해 부지 내부를 유료화하였습니다. 다양한 문화재가 야외전시물로 설치되어 있는 정원을 부디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Column 04

평상전시의 방침 변화

제실박물관 당시의 가마쿠라시대 전시새해맞이 특집전시

위: 제실박물관 당시의 가마쿠라시대 전시
아래: 새해맞이 특집전시 <간지(干支)를 맞이하다>

개관 당시에는 작품 분야별로 전시하였으나 다이쇼 4년(1915) 가을의 대전기념(大典記念) 교토박람회 특별전을 계기로 시대별 전시로 방침이 변경되었습니다. 다이쇼 13년(1924)에 교토시로 이관된 후 다시 분야별 전시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평상전시에 변화를 주기 위해 메이지 31년(1898)부터 신년 특별전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메이지 34년(1901)부터는 새해 첫 궁중 가회(시짓기)의 표제와 그해의 간지(干支)를 주제로 한 전시가 개최되어 메이지 43년(1910)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전시는 헤이세이 지신관이 개관된 후에 새해맞이 특집전시 <간지(干支)를 맞이하다>의 형식으로 부활하였습니다.

Column 05

수장품(박물관 소장품과 기탁품)

기리시마산 등산도생각하는 사람

위: 중요문화재 사카모토 료마 관련 자료 중 <기리시마산 등산도>(부분)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아래: <생각하는 사람> 오귀스트 로댕 만듦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교토국립박물관은 그 성립 경위의 영향으로 교토 소재의 신사와 절을 중심으로 기탁품이 유명한 한편, 소장품은 구입과 기증을 통해 한층 더 내실을 다져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래와 같은 기증 컬렉션은 교토국립박물관 소장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 사카모토 료마 관련 유품 쇼와 6년(1931) 기증
    사카모토 야타로 기증. 교토국립박물관하면 역시 사카모토 료마!
  • 모리야 컬렉션 쇼와 28년(1953) 기증
    모리야 고조가 수집한 옛 불교 필사 경전 등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료입니다.
  • 우에노 컬렉션 쇼와 28년(1953) 기증
    아사히신문사 창립자 중 한 명인 우에노 리이치가 수집한 중국 서화류입니다.
  • 오귀스트 로댕 만듦 <생각하는 사람> 쇼와 31년(1956) 기증
    쇼와 25년(1950)에 기탁되어 이후 교토국립박물관이 구입할 예정이었으나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다카라주조의 사장 오미야 구라키치의 기부로 소장이 실현되었습니다.
  • 스마 컬렉션 헤이세이 11·12년(1999·2000) 기증
    외교관이었던 스마 야키치로가 수집한 중국 근대 서화류입니다. 중국 근대 화가와의 교류를 통해 입수한 작품이 많으며 기준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편, 초기의 구입품에는 메이지 38년(1905)에 묘치인 절로부터 750엔에 양도받은 국보 <죽재독서도>(슈분 그림으로 전해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토국립박물관이 은사교토박물관으로 교토시에 이관되었을 당시, 도쿄국립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