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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전시물

분수 외

분수 외

분수 뒤로 보이는 메이지 고도관은 히가시야마 산을 배경으로 절묘한 한 컷을 선사합니다. 로댕이 만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만듦
1880년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대표작입니다. 지금은 생각하는 사람 단독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지옥의 문>이라는 거대한 작품의 일부로 만들어졌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여럿 만들어졌는데, 교토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이 작품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호코지 절 돌담

국가 지정 사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창건한 호코지 절의 돌담입니다. 덴쇼 16년(1588)에 공사가 본격화하고 곧 만들어졌으며, 당시에는 이 돌담 위에 진흙을 바르고 기와를 올림 담을 둘렀습니다. 지금도 남서쪽 구석에는 그 기둥을 세운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호코지 절을 재건한 이후에는 진흙 기와 담이 아닌 회랑으로 둘렀습니다.

우마마치 십삼중석탑

북쪽 탑: 새김 글 없음, 남쪽 탑: 새김 글 <에이닌 3년>
가마쿠라시대 13세기

이 두 기의 석탑은 현재 위치에서 북동쪽으로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우마마치(히가시야마구 시부타니도리 히가시오지 히가시이루)의 골목 안쪽에 있었다. 총(塚) 위에 나란히 있었으며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의 가신 사토 쓰구노부, 다다노부 형제의 묘로 알려져 왔다. 에도시대(1615-1868)의 교토 지리지 『미야코메이쇼즈에』에 따르면 북쪽 탑은 5층, 남쪽 탑은 3층이었으며 지진으로 떨어졌다고 추정되는 상층 돌은 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는 방토로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쇼와 15년(1940)에 해체·수리해 현재의 십삼중탑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해체·수리 당시 작은 불상과 탑 등이 두 탑의 초층 탑신석에 나 있는 구멍 속에서 발견되었다.
두 탑은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남쪽 탑의 기단부 정면에는 <에이닌 3년(1295) 2월, 원주 호사이> 라는 새김 글이 있으나 북쪽 탑에는 새김 글이 없다. 이들 십삼중탑이 만들어진 경위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울러 이전부터 있었던 탑 꼭대기의 상륜부는 훗날 보완된 것이어서 이설하지 않았다.

서쪽 정원

서쪽 정원

교토국립박물관 부지 안, 남서쪽에 있는 정원입니다. 일본의 석불, 초석, 돌 다리 기둥 등 야외전시물을 여기저기 배치했습니다. 산책하며 감상해보시기를!

석등

운간지 절 유래
가마쿠라시대 13세기

야마시로·단바 국경 표시 돌기둥

에도시대 19세기

교토의 서쪽 출입구인 구 오이노사카도게 고개(현 교토시 니시쿄구)에 놓여있던 돌기둥. '여기서부터 동쪽, 야마시로노쿠니'라고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단바노쿠니 가메야마(현 가메오카시)에서 교토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복제 금동팔각등롱

헤이안시대 21세기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나라 도다이지 절 대불전 앞에 있는 국보 금동팔각등롱을 실물 크기로 복제한 것이다. 실제 등롱과 마찬가지로 비소 등의 불순물을 포함한 동을 사용해 제작했다. 국보 금동팔각등롱은 덴표쇼호 4년(752)의 대불개안 의식에 앞서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며, 화사 부분의 온조보살(音声菩薩)과 문 부분의 사자 등의 표현은 덴표시대(729-749)의 주조 작품 중에서도 백미로 알려진다.

지장보살 좌상

석조
가마쿠라시대 13세기
가미야 미치 씨 기증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들고 56억 7천만 년 후에 그 후계자인 미륵보살이 나타날 때까지의 무불 시대, 즉 부처가 없던 시대에 중생을 구제하는 임무를 맡은 보살이다. 그 때문에 현실의 승려와 마찬가지로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좌상은 현실감 있는 표정과 옷 주름의 기복 형태에서 가마쿠라시대(1185-1333)의 특징이 엿보이며 제작은 13세기로 추정된다. 도다이지 절 재건에 앞서 중국에서 석공을 데려온 영향 때문일까, 석조 문화재가 적은 일본에서 드물게도 이 시기에는 석조상이 유행한다.

집 모양 돌널(가형 석관)

오카야마현 세토우치시 오사후네초 이이 출토
고훈시대 6세기

부동명왕 입상

석조
무로마치시대 15세기

명왕은 밀교 특유의 존상으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분노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자비로움만으로는 구제할 수 없는 대상을 격한 분노로 구제하기 위함이다. 명왕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이 부동명왕이다. 부동명왕은 대일여래의 심부름을 하는 사자였으며 밀교 수행자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왼손에는 오라(견삭)를, 오른손에는 검을 잡고 있으며 등 뒤는 화염에 휩싸여 있다. 옛 양식도 보이나 몸 표현이 다소 관념적이고 딱딱한 것 등으로 보아 무로마치시대(1392-1573)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초석

나라시 사키초 출토
나라시대 8세기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돌비

새김 글: <엔쿄 2년>
가마쿠라시대 엔쿄 2년(1309)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헤이안쿄 석재

교토시 가미교구 센본마루타마치 부근 출토
헤이안시대 9세기
구로즈미 류시로 씨·교토시 기증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호코지 절 대불전 깐돌(부석)

모모야마시대 17세기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초석

교토국립박물관 부지 내 서남쪽 구역 출토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도카이도 차석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구조야마 산 부근 출토
에도시대 18-19세기
구로즈미 류시로 씨 기증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차석(車石, 구루마이시)은 우마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길에 깔았던 오목한 형상의 석재를 말한다. 에도시대에는 윤석(輪石, 와이시)이라고도 불렸다. 교토에서는 동쪽부터 도카이도, 남쪽부터는 다케다카이도 도로 등에 부설되었다. 본래 2열로 이어져 있었다.

호코지 절 대불전 철제 고리

에도시대 17세기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가 창건한 호코지 절 대불전은 지진과 화재로 몇 차례 무너지거나 소실되었고 그때마다 재건되어 왔는데 간세이 10년(1798)에 낙뢰로 다시 소실되었다.
이 철제 고리는 에도시대(1615-1868)에 재건될 당시의 건축 자재로 추정된다. 거대한 건축물을 떠받치는 두꺼운 기둥을 이러한 철제 고리로 고정했었다.

산조오하시 다리 석재 교각
고조오하시 다리 석재 교각

산조오하시 다리 석재 교각: 1개, <덴쇼 17년 쓰노쿠니 미카게(1589년 현 고베시) 7월 길일>이라는 새김 글 있음
고조오하시 다리 석재 교각: 2개
모모야마시대 16세기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초석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고조오하시 다리 석재
교각

교각: 3개, <쓰노쿠니 미카게 덴쇼 17년 5월 길일>이라는 새김 글 있음
보: 2개
모모야마시대 16세기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덴쇼 17년(1589),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가 가모가와 강 고조에 놓은 대교의 교각. 표면에 <쓰노쿠니 미카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쓰노쿠니의 미카게, 즉 현재의 고베시에서 옮겨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미타삼존상

석조
교토시 후시미구 다케다초 부근 출토
헤이안시대 12세기
교토 안라쿠주인 절 소장

후시미 다케다초 부근에서 발견된 석조 아미타삼존상이다. 중앙의 아미타여래를 끼고 오른쪽에는 연화좌에 앉은 관음보살, 왼쪽에는 합장을 한 세지보살이 있다. 당시 유행했던 정토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아미타가 왕생자를 맞이하는 장면, 즉 내영(來迎) 장면을 나타낸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일본에서는 석조 조각이 그다지 융성하지 않았고 남아 있는 것도 많지 않다. 이로 보더라도 헤이안시대(794-1185)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아미타삼존상은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대일여래 좌상

교간지 절(고도)에 전해 내려옴
석조
헤이안시대 12세기

여래는 깨달음을 얻어 일반적으로 장신구 등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대일여래는 여래를 넘어선 존재로서 머리에 쓰는 관이나 장신구 등으로 장엄함을 나타낸다. 이 좌상은 배 앞에 양손을 포개어 정인(定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태장계의 대일여래임을 알 수 있다(금강계 대일여래의 손갖춤은 지권인(智拳印)). 이 좌상을 전해 온 교간지는 11세기 초엽에 천태종 승려 교엔이 연 절이다. 교엔은 평소에 가죽옷을 입었던 것에서 가죽 성인[皮聖: 가와히지리]이라고 불리며, 교간지 절도 가죽 혁(革) 자를 써서 세칭 혁당(革堂), 일본어 발음으로는 고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화면 왼쪽: 크리스천 묘비

교토 안요인 절 경내 발견
모모야마시대 17세기

게이초시대(1596-1615)에 만들어진 크리스천의 묘비. 대부분이 에도시대(1615-1868)에 파괴되고 지금은 조금만 남아 있다. 비석 정면에는 십자가와 IHS('인류의 구세주 예수'라는 의미의 라틴어), 서력 연호, 세례명 등이 새겨져 있다.

화면 오른쪽: 크리스천 묘비

교토 조간지 절 경내 발견
모모야마시대 17세기
후지이 데루히사 씨 기증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석등

마이즈루조 성 터에 전해 내려옴
가마쿠라시대 13세기

석등

야마오카 히로시 씨 기증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동쪽 정원

동쪽 정원

교토국립박물관 부지 안, 동쪽 언덕 한쪽에는 한반도의 석조 유물을 배치한 정원이 있습니다.
아늑한 동쪽 정원 산책도 즐겨보시기를!

분묘 석물

석인[石人] 13개, 석양[石羊] 1쌍, 장명등 2개, 받침 5개, 사각 받침 8개, 망주석 2개
한반도  조선시대
야마모토 아야 기증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한반도에서는 고대부터 전통적으로 고귀한 신분을 지닌 이들의 분묘 주변을 돌 조각으로 장식했습니다. 현재 교토국립박물관 동쪽 정원의 석물은 조선시대(1392-1897)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조선시대를 표기할 때 이씨조선시대 혹은 이조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석탑・석불

호코지 절 돌담 뒤에서 출토된 석탑과 석불입니다.

건물 개요는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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