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개요
- 전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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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기타노 텐진-신토 신의 전설>
-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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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8일(토) ~ 6월 14일(일)
<전시 기간 구분>
전기 전시: 2026년 4월 18일(토) ~ 5월 17일(일)
후기 전시: 2026년 5월 19일(화) ~ 6월 14일(일)
※ 일부 작품은 위 시기 외에도 전시 교체를 실시합니다.
-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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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립박물관 헤이세이 지신관
- 교통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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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선, 긴테쓰 전차, 게이한 전차, 한큐 전차, 시 버스
오시는길
- 휴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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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 단, 2026년 5월 4일(월·공휴일)은 개관. 2026년 4월 28일(화)부터 5월 10일(일)까지 계속해서 개관합니다.
- 개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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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 17:30 (매표마감: 폐관 30분 전)
금요일 9:00 ~ 20:00 (매표마감: 폐관 30분 전)
- 관람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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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000엔 (1,800엔) 대학생 1,400엔 (1,200엔) 고등학생 900엔 (700엔) - 괄호 안의 요금은 사전 판매 요금 및 단체 요금입니다.
- 단체는 20명 이상을 의미합니다.
- 사전 판매 티켓은 2026년 1월 16일(금)부터 4월 17일(금)까지 각종 온오프라인 티켓 판매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티켓에 관한 정보는 특별전 공식 온라인 티켓 사이트 e-tix; https://www.e-tix.jp/kitano/en/(영어)에서 알려 드립니다.
- 대학생·고등학생은 학생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 중학생 이하는 무료입니다.
- 장애인(*)과 동반자(1명)는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관련 자료를 제시해 주세요. - 캠퍼스 멤버즈 회원은 학생증이나 교직원증을 제시하실 경우, 각 해당 관람료에서 500엔씩 할인됩니다. 단, 당일 정문[남문] 매표소에서만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 특별전 워크숍
- 자세한 내용은 일본어 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세요.
※ 워크숍은 일본어로 개최됩니다.
- 특별전 기념 강연회
- 자세한 내용은 일본어 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세요.
※ 기념 강연회는 일본어로 개최됩니다.
- 오디오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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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여 요금】
- 1대 700엔 (세금 포함)
- 【수록 시간】
- 약 35분
- 【제공 언어】
- 일본어·영어
- 【대여 접수 시간】
- 9:00 ~ 17:00
금요일 9:00 ~ 19:30
- 특별전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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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사항은 도록∙목록∙관련서적 등
-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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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립박물관, 기타노텐만구 신사, 요미우리신문사
-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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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니산업 주식회사, 서일본 여객철도 주식회사, 다이와하우스공업 주식회사, Non-Destructive Inspection Co., Ltd.
- 특별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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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텐만구 바이후회
-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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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 관광협회
- 특별전 공식 웹사이트
- 특별전 공식 SNS
전시의 이모저모
교토 북서쪽에 있는 기타노텐만구 신사는 헤이안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가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입니다. 미치자네는 우다 천황
(887-897 재위)에게 중용되었고 그 후의 다이고 천황(897-930 재위) 시절에는
우대신에까지 오르지만, 중상모략으로 다자이후로 좌천되어 교토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치자네의 만년의 불행과 생전 업적은 사후에 다양한
전설을 낳았고, 사람들의 동정과 경외, 존경을 모았으며 이윽고 영험 있는 ‘텐진(천신)’
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2027년에 치러지는 미치자네 사후 1125주기 ‘반만등제’ 제사를
계기로 기타노텐만구 신사에 전하는 보물을 중심으로 일본 각지 텐만구·텐진샤 신사와
관련 신사·절에 전하는 문화재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합니다. 사상 처음으로 전권 전 장면을
공개하는 국보 <기타노 텐진 연기 두루마리 그림 (조큐본)>을 비롯하여 성립 연대와 필자가
다른 <고안본> <미쓰노부본> <미쓰오키본> 등 많은 <기타노 텐진 연기 두루마리 그림>을
통해 설화 상의 기타노 텐진 탄생 장면을 소개합니다.
이 전시가, 일본 각지에 퍼져 있는 텐진 신앙을 그 발상지인 기타노텐만구 신사로부터
따라가 보며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측면과 그것들이 일본 문화 속에서 해 온
중요한 역할에 대해 아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보 기타노 텐진 연기 두루마리 그림 (조큐본) 권제6 (부분)
교토 기타노텐만구 신사 소장
(전기간 전시. 위 장면은 5/19 ~ 6/14 전시)
제1장 텐진 신앙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845년에 태어나 아버지 스가와라노 고레요시와 같은 대학 교관(몬조 하카세)을 거쳐 우다 천황의 측근으로서 정치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중상모략으로 규슈로 좌천되고 교토로 돌아오지 못한 채 903년에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치자네 사후 얼마 되지 않아 도키히라가 죽고, 교토에서 재해와 낙뢰 등 흉흉한 일들이 겹치자, 사람들은 그것이 억울하게 죽은 미치자네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한을 품고 죽은 원령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미치자네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교토 안팎에서 신탁이 내려오고 947년, 교토 북서쪽 기타노 땅에 신사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기타노텐만구 신사의 시작입니다. 959년에 후지와라노 모로스케가 신전을 지은 후에는 ‘텐만구 텐진’, ‘텐만구 신뵤’라는 신호(신의 칭호)가 쓰이게 되고 점점 선한 신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생전의 학식과 시의 재주를 기려 ‘문도(학문)의 시조, 풍월(시가)의 주인’으로 여기는 신앙이 싹텄습니다.
1.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845년에 대학 교관(몬조 하카세) 스가와라노 고레요시의 삼남으로 태어난 미치자네는 우다 천황의 신임을 얻어 아버지와 같은 대학 교관이 됩니다. 이후 천황의 직속 부처 ‘구로우도노토’의 수장 등의 관직을 역임했으며 894년에는 견당사 폐지를 건의하는 등 천황의 측근으로 활약했습니다. <관평어유계>【4】에는 우다 천황이 그 정치 수완을 높이 평가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892년에는 《유취국사》를 쓰고 편집했으며 900년에는 다이고 천황의 요청으로 시문집 《관가문초》【5】를 쓰는 등 학자, 시인으로서 깊은 학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미치자네가 생전 아끼던 것으로 전하는 <전 관공 유품>【1】도 소개합니다.
국보 거북 등딱지 장식 상아 빗
<전 관공 유품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공 유품으로 전함)> 가운데
오사카 도묘지텐만구 신사 소장
(전시: 5/12 ~ 6/14)
2. 신이 된 미치자네
헤이안시대(794-1185)에는 역병과 천재지변 등의 재난을 억울하게 죽은 인간의 원령이 일으킨다고 여겨 그 원령을 달래어 재난을 막으려는 신앙이 성행하였습니다. <일본기약>【6】에도 적혀 있듯이 미치자네도 처음에는 원한을 가지고 죽은 원령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신호(신의 호칭)를 받고 교토 북서쪽 기타노 땅 신사에 모셔진 후에는 선한 신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문필·학문의 신으로 기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원령과 선한 신 두 측면을 가진 텐진은 여러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기본적으로는 <소쿠타이텐진(어본어경)> 【19】에 보듯이 홀을 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소쿠타이텐진: 관복 차림의 텐진 (근본어영)
교토 기타노텐만구 신사 소장
(전시: 5/5 ~ 6/14)
3. 신불습합
불교가 전파되고 수용되는 과정에서 ‘신토의 신은 불교의 부처(본지)가 일본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화신(수적)으로 강림한 것’이라고 하는 사상이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신과 부처를 동일시하는 생각을 ‘신불습합’이라고 하며 텐진은 십일면관음과 동체라고 여겨졌습니다.
텐진 신앙의 이른 단계에서 진언종이나 천태종과의 연결성이 생겨나고 특히 하세데라 절의 십일면관음과의 관계가 강조되었습니다. 미치자네 작으로 전하는 <천수관음입상>【41】이나 <십일면관음입상>【48】 등 미치자네와 관련 있는 신사·절에 전하는 불상에서도 그 밀접한 관계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십일면관음입상
교토 만슈인 절 소장
(전기간 전시)
제2장 기타노텐만구 신사의 역사
교토 기타노 땅에 미치자네가 신으로 모셔지기까지에 관한 이야기에는 종교적 설화와 역사적 사실이 섞여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실제 기타노에서 미치자네 신앙이 어떻게 생겨나고 전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더 검토가 필요하지만, 대개 10세기 중반에는 텐진 신앙이 뿌리내린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원령을 달래는 신앙에서 시작한 텐진 신앙에서 텐진은 우레의 신이나 역병의 신, 무신과 같은 존재도 내포하면서 천둥의 신이나 농경의 신이 되기도 하고 생전의 학식에 따라 한시나 시가, 학문의 신, 나아가 만년의 불행과 연관 지어 원죄구제의 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위상은 수도를 지키는 ‘왕성진수의 신’으로서 천황 또는 자신의 원수인 후지와라 가문의 숭앙을 받게 될 정도로 컸습니다.
미치자네가 신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이러한 기타노 신사의 창건 유래, 그 영험담을 모은 두루마리 그림이 <기타노 텐진 연기 두루마리 그림>입니다.
1. <기타노 텐진 연기 두루마리 그림>의 세계
<기타노 텐진 연기 두루마리 그림>은 예로부터 다수 제작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본문에 조큐 원년(1219)의 연호가 적혀 있어 <조큐본>【50】이라고 일컬어지는 버전은 같은 종류의 두루마리 그림 중에서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기타노텐만구 신사에서는 근본 연기로 여겨져 신사의 가장 중요한 보물로 자리매김해 있습니다. 일본의 두루마리 그림으로서는 최대급인 세로 52센티미터의 화면 높이를 자랑하며 약동감 넘치는 인물, 풍경 표현을 보여주는, 가마쿠라시대(1185-1333)를 대표하는 두루마리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 밖의 텐진 연기 두루마리 그림도 기본 구성은 기존의 것을 따르면서도 각각 개성이 있습니다. 텐진 신앙이 일본 종교사에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큽니다.
국보 기타노 텐진 연기 두루마리 그림 (조큐본) 권제1 (부분)
교토 기타노텐만구 신사 소장
(전기간 전시. 위 장면은 4/18 ~ 5/17 전시)
2. 기타노 신사의 풍경과 교토 사람들
교토 기타노 땅에는 중세 이후 거듭해서 신전이 지어졌습니다. <기타노미야 만다라> 【65】를 통해 회랑이 있던 당시 신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불습합 사상이 침투해 있던 신사 안에는 불당도 많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무로마치막부 3대 쇼균 아시카가 요시미쓰에 의해 지어진 기타노교오당은 유명합니다. 기타노교오당에 보관되어 있던 경전류나 불상【81-83】은 근세 이후 ‘폐불훼석(신불분리정책으로 인한 불상 등의 파괴)’ 등을 거쳐 교토 다이호온지 절 외에 봉안되었습니다.
1607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에 의해 대규모 신전이 지어졌고 본전 등 여덟 동으로 지어진 국보 신전은 모모야마시대(1573-1615)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75-77】.
제3장 기타노텐만구 신사와 예능·문화
시대에 따라 바뀌는 텐진 신앙. 기타노텐만구 신사는 문화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도(학문)의 시조, 풍월(시가)의 주인’으로 여겨지던 텐진은 근세가 되면 와카 시의 신으로 숭앙받게 되고 천황과 상황, 조정 귀족들이 자신들이 지은 와카 시를 적어 기타노텐만구 신사에 봉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타노텐만구 신사에서 초기에 활동했고 이즈모오야시로 신사의 미코(신사에 봉사하는 여성)로도 알려지는 오쿠니의 공연은 훗날 가부키로 발전합니다.
한편, 재앙을 가져오는 무서운 원령이라는 범주를 넘어 무신으로서의 측면도 텐진 신앙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 이후, 무관들의 숭배를 가장 강하게 받은 신은 하치만신이고 이 신호(신의 호칭)가 새겨진 무기가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는 ‘하치만대보살’과 나란히 ‘텐만대자재텐진’을 앞뒤로 새긴 칼【122】도 있어 무신으로서의 텐진과 그 신앙의 양상을 시사해 줍니다.
1. 학문과 예능의 신
<기타노텐만구 성묘 법락 봉납 렌가>【90】와 <기타노텐만구 성묘 법락 와카 시>【91】는 질과 양 할 것 없이 시가를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텐진 신앙이 융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한, <도당천신상>은 중국의 도복을 입고 어깨에 가사가 든 주머니를 매고 매화나무 가지를 겨드랑이에 낀 모습의 텐진을 그린 것으로, 텐진이 교토 도후쿠지절을 창건한 승려 엔니의 조언을 받고 하룻밤 사이에 중국으로 건너가 남송의 고승 무준사범을 만나고 법통을 잇는 표시로 가사를 받았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표정에 원령으로서의 화난 모습은 없고 선한 신, 특히 학예의 신으로서의 성격이 드러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요문화재 오쿠니 가부키 그림 병풍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전기 전시: 4/18 ~ 5/17)
2. 무예의 신
천부의 신장을 떠올리게 하는 무장한 모습의 <천왕입상>【14】은 <도켄상인명도기>【13】에 나오는 ‘그 모습을 보건대 인왕상같도다’와 겹칩니다. 중세에는 기타바타케 도모노리나 오우치 모리하루와 같은 유력 무사와 관련 있는 갑옷과 투구【123-130】가 텐만구·텐진샤 신사에 봉납되었고, 근세 이후에는 스가와라 성을 자칭한 가가번주 마에다 가문의 당주가 기타노텐만구 신사에 도검류【113-117】를 봉납했습니다. 겐지 가문의 중요 보물 ‘히게키리’와 ‘히자마루’를 본떠 만들었다는 전승을 갖는 이름난 칼 두 점【131·132】은 무술과 관련된 괴물 퇴치 이야기에 등장하여 특히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지금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중요문화재 다치 ‘구니쓰나’를 새김 (오니키리마루/히게키리)
교토 기타노텐만구 신사 소장
(전기간 전시)
중요문화재 다치 ‘□타다’를 새김 (우스미도리/히자마루)
교토 다이카쿠지 절 소장
(전기간 전시)
라조몬 두루마리 그림 상권(부분)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전기 전시: 4/18 ~ 5/17)
